승자 독식·칸막이식 경쟁으론 미래 없어…개방형 분산 협업에서 답 찾아야

민초들의 ‘플랫폼 반란’을 기다린다
한때 번성했던 쥐라기 공원이 일순간에 사라진 이유는 뭘까. 다각도로 분석할 수 있겠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모든 생태계가 자체의 생명과 주기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변화에 적응하는 종(species)만이 오래 살아남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환경에 대한 적응 능력 자체가 생존의 관건인 셈이다. 그런데 이 적응 능력에 관해서는 기득권들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적응을 거부하거나 지연한 결과가 자체적인 종의 소멸 외에도 생태계의 몰락을 가져올 수 있기 때문이다.


‘쥐라기 공원의 몰락’이 준 교훈
무엇보다 작금의 환경 변화는 과거 수십 세기에 걸쳐 경험한 변화를 넘어선다. 여기저기 조금씩 손을 대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사물인터넷(IoT)으로 불릴 만큼 이제는 기계끼리의 연결마저 현실화되고 있지만 우리는 이를 이해하고 대응할 수 있는 기회를 제대로 포착하지 못하고 있다. 변화의 핵심은 연결(connectivity)된 세상이다. 이런 새로운 세상에 대한 적응이 늦어지면서 지금의 세상이 필요로 하는 인력을 배출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청년 실업을 포함해 각종 투자 관련 흐름의 난맥상을 뼈저리게 경험하고 있다. 여전히 공급자 위주의 칸막이식 경쟁의 도가니는 견고해지고 있고 시대와 동떨어진 엘리트 교육과정은 실업 양산의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쩌면 섣부른 대응보다 주저함이 일견 덕목으로 간주될 수도 있다. 그만큼 새로운 생태계가 형성되는 과도기의 혼란은 정책의 방향조차 가늠할 수 없는 상황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 스스로의 생존 본능과 직관에 의존해야 하는 상황이다. 사실상 현재의 ‘연결된 시장(connected market)’에서는 필요한 준비를 위한 거의 모든 재원이 공개돼 있다. 문제는 우리와 같은 폐쇄 환경에 익숙한 주체들은 울타리를 넘어 저쪽 세상에서 전개되는 현상에 대해 좀처럼 개안하기 쉽지 않다는 점이다.

실제로 앞을 내다보기 힘든 상황에서는 기업들조차 위험에 대한 적극적 자세를 견지하기 어렵다. 정작 투자 주체인 기업들이 현금만 쌓아 놓고 있고 민간들은 언제 꺼질지 모르는 자산 버블에 상당한 매력을 느낄 수밖에 없다. 그나마 글로벌 기업들은 플랫폼을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잠식해 가고 있는데 국가 단위의 경쟁에 익숙했던 우리의 경제 주체들은 아직 대열을 재정비하고 경쟁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국가로서도 잠재된 위험에 대해 신중한 자세로 임할 수밖에 없고 정책 시야는 극도로 단기에 맞춰질 수밖에 없는 현실에 둘러싸여 있다. 그만큼 미래를 이해하지 못한 현재의 노력은 허무하게 끝나기 쉽다.

그런데 이처럼 생존 위주로 변화된 세상에 적응하다 보면 심각한 문제가 노출된다. 자칫 가장 근본적으로 고쳐져야 할 부문은 그대로 남아 있고 약하고 소외된 부문에 대한 구조조정만 강조되기 쉽다. 그 결과 쥐라기 공원에서 풀과 토끼들만 사라지고 있다. 표면적으로 강조되는 개방 환경과 다양성 대신에 통제와 획일적 명령 전달 체계만 강화되고 있다. 새로운 곤충이나 초식동물들은 정작 변화를 주도해야 할 선도 계층의 자체적 문제로 초래된 생존 기반의 와해로 갈라파고스의 펭귄 신세를 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미국이라는 슈퍼파워의 기둥이 존재했지만 이제 다극화 시대에서 이러한 역할은 다른 방식으로 수행돼야 한다. 글로벌 분산형 지배 구조의 변화야말로 우리가 거부할 수 없는 세상의 이치인 것이다. 기존의 국가 체제가 국익 우선으로 운영돼 왔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을 기반으로 국익을 추구하는 데 필요한 공공재 공급을 주도할 주체는 어디에도 없다.

즉 글로벌 공존의 배후는 어디까지나 국익 우선의 기반이 자리 잡고 있다. 그러나 기술 요인을 통합된 환경에서 일국에서 관리하기 어려운 위험 요인이 커지면서 각자의 생존 모드가 우선시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강자 우선의 선택이 존중되기 마련이고 대외 의존적 패러다임 기반의 한국 경제로서는 더욱 끌려갈 수밖에 없다.

특히 국가적으로 외부 여건이 악화되고 도전이 강해지는 상황에서는 생존에 중요한 부분을 보호할 수밖에 없다. 한국이 성장 엔진인 글로벌 대기업에 대해 각별한 지지 장치를 가동하고 있는 이유다. 이러한 구도에서는 어떠한 정책 노력도 우리의 미래를 지켜줄 수 있는 패러다임 전환에 힘을 보태기 어렵다. 한계를 극복하는 일은 어디까지나 이제 앞으로 펼쳐질 환경의 주인인 민간 스스로의 몫이다.


소수 엘리트 기업 중심에서 벗어나야
역사적 반전을 기대할 수 있을까. 연결된 세상에서는 이러한 기적이 충분히 가능하다. 세계 질서의 재편 과정에서 한국은 정보통신기술(ICT)이 선사하는 연계성을 충분히 활용해 미래의 생존 플랫폼을 구축해야 한다. 분명 미래 플랫폼의 핵심은 개방형 분산 협업 시스템이다. 더 이상 소수의 엘리트 기업이 아니라 다수의 연결된 민간 주체들이 패러다임의 주도권을 가지게 된다. 선진국의 압도적인 우위에도 불구하고 생존할 수 있는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을까. 가능하다.

첫째,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문제는 개별 요소의 우수성에도 불구하고 수직적 계급사회에서 강화된 문화적 자본에 따라 횡적 연결이 쉽지 않은 데 있다. 그러나 사실 따지고 보면 이러한 연결 구조의 특성에도 불구하고 가족 중심의 공동체 의식은 매우 강하다. 따라서 공동체 기반의 연결과 이들 공동체 간의 연결을 통해 하나의 연결된 거대 시장을 구축할 수 있다면 충분히 승부를 걸어볼만 한 것이다. 동양권에만 존재하는 시장화되지 않은 자산 토대는 미래 경쟁력의 원천이다.

둘째, 개발되지 않은 엄청난 잠재력 외에도 현 선두 주자들의 매몰비용이 워낙 크기 때문에 환경 변화에 최적인 선택에 쉽게 나설 수 없는 점을 투자가 미비한 한국 생태계에서 역으로 이용해야 한다. 특히 현 엘리트 중심의 교육제도와 관료 시스템만으로는 수시로 변하는 개방 환경에서 필요한 지적 연계를 형성할 수 없기 때문에 모두가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 플랫폼으로 전환해야 한다.

흔히들 질서 재편이 꼴찌가 졸지에 첫째가 되는 비이성적 선택을 뜻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다. 전혀 그렇지 않고 오히려 고도로 전문화되고 폭넓은 지적 리더십이 더욱 빛을 발하게 된다. 따라서 현 환경 변화의 메시지는 타인을 고려하지 않는 무한 경쟁의 승자 독식주의가 아니라 인류 사회에 기여하는 만큼 대접받는 세상이다. 그러나 한국과 같은 의식 토대의 변화가 공감대 형성으로 이어지려면 상당한 노력과 시간이 필요하다. 다만 모두가 참여하는 패러다임 전환의 역사적 기회는 방향이 제대로 설정될 때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변화된 환경은 개별적 노력에서 더 나아가 이것이 다른 것과 결합되고 더 커 나갈 수 있는 오케스트라의 무대, 즉 플랫폼을 요구하고 있다. 방향은 분명히 연결된 세상에서 각자의 잠재력을 발휘하는 것이므로 이를 현실로 구현하기 위한 플랫폼이 존재해야 한다.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무대와 관중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일인 독주 시대의 편협한 토대보다 앞으로 전개될 플랫폼은 개인의 창의성을 마음껏 발휘하기 위한 공개 무대이고 관중은 세계의 시장이다. 국가는 이렇게 본질적으로 변화된 환경에 맞게 국민들이 스스로의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판을 짜 줘야 한다. 소위 민초들의 플랫폼 반란을 통해 생태계의 지속 가능성을 높여야 한다. 정부가 주도적으로 개입하지 말고 시장 스스로 연결 고리를 찾아갈 수 있도록 생태계적 여건을 조성하는 일에 매진해야 한다. 그야말로 현 환경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공통 애플리케이션 프로그래밍 인터페이스(API) 기준과 같은 공공재의 공급에서 국제기구가 적극 나서야 한다.

우리 모두의 궁극적 노력은 결국 전체를 이롭게 하는 틀 안에서 개인의 행복을 증진시키는 것이다. 우리 자신이 만들어 가는 새로운 개방 플랫폼 위에서 우리는 쥐라기 공원의 쇠락 대신 자신뿐만 아니라 세계를 이롭게 할 수 있는 반전의 축복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최공필 한국금융연구원 선임연구원